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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오후 2:36:29 입력 뉴스 > 기자탐방

우리가 몰랐던 ‘34번째 민족대표’ 이야기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

한국의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파란 눈의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

“석호필을 아시나요?”


이 물음에 당신은 대답을 어떻게 하겠는가. 실제로 여러 시민들에게 물어본 결과, 인기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석호필’이 있다.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활약한 인물,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뿐만 아니라 ‘석호필’과 같은 푸른 눈을 가진 4명의 청년들의 존재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5명의 캐나다인들이 왜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었을까? 그들의 이야기가 서울시 시민청에서 펼쳐지고 있다.

 

 

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3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 시티갤러리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를 개최 중이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전시를 열었다.

 

그리고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함께 지키고 의료봉사와 학교 설립 등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힘을 더한 캐나다인들의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3·1운동과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

전시 개막식에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

 

 

프랭크 스코필드의 손자, 딘 스코필드

프랭크 스코필드의 손자, 딘 스코필드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는 5명의 캐나다인들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이들과 관련된 글, 영상, 사진 50여 점 등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일제강점기 속 이들의 활약을 조명하고 있다.

 

조선 말기인 1888년부터 1945년까지 200여 명에 이르는 캐나다인이 선교사, 학자, 의사, 기자로 한국을 찾아왔으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고, 일제의 학살을 국제사회에 폭로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다섯 명의 캐나다인은 로버트 그리어슨, 아치발드 바커, 스탠리 마틴, 프레드릭 맥켄지, 프랭크 스코필드이다.

 

 

‘로버트 그리어슨’이 바라본 성진 만세운동

 

로버트 그리어슨의 가족 사진, 그는 함경북도 성진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생생히 기록했다.

로버트 그리어슨의 가족 사진, 그는 함경북도 성진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생생히 기록했다.

 

전시에서 먼저 소개되는 인물은 ‘로버트 그리어슨’(1868-1965)이다. 한국 이름으로는 ‘구예선’으로 불린 그는 캐나다 출신 선교사다. 함경북도 성진에 보신학교, 협신중학교와 제동병원 등을 세우고 애국계몽운동과 의료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시위 군중들은 일본 우체국 앞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일본인 시장 사무실과 마지막에 경차럿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시위를 끝냈다. … 이것이 전부였고 시위는 참으로 조용히 끝났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른 아침부터 일본인 소방대들이 도끼를 들고, 경찰들은 총을 들고 한국 사람을 닥치는 대로 치고 도끼질하고 총을 쏘았다”

 

그리어슨은 함경북도 성진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대해 본 대로 기록했다. 그리고 일제로 인한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자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돌봤다.

 

 

간도 만세운동 현장을 알린 ‘아치발드 바커’

 

1913년 부인 레베카와 함께 만주 용정으로 출발하는 바커

1913년 부인 레베카와 함께 만주 용정으로 출발하는 바커

 

한국 이름으로 ‘박걸’로 불린 ‘아치발드 바커(?-1927)는 1911년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했다. 1913년 중국 용정에 명신여학교를 세워 여성 교육에 힘썼다. 그는 7년 후 은진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때 일제가 금지한 한글과 국사를 가르치며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아치발드 바커는 1919년 간도 지방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현장을 세심히 관찰했다. 간도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2일 서간도, 13일 북간도와 용정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비폭력만세운동을 전개한 한국인들이었지만 일제는 무력으로 그들을 진압했다.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바커는 그 모습들을 사진에 담아 서울의 선교사들과 캐나다 선교본부에 보고했다. 또한, 스탠리 마틴과 함께 경신참변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을 세웠다.

 

 

경신참변을 세계에 전한 ‘스탠리 마틴’

 

제창병원에서 진료하는 마틴

제창병원에서 진료하는 마틴

 

한국 이름으로 ‘민산해’로 불린 스탠리 마틴(1890-1941)은 캐나다 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 길림성 용정에 있는 제창병원 원장으로 재직해 의료선교 활동도 진행했다.

 

특히, 그는 1920년에 일어난 경신참변을 국제 사회에 폭로했다. 경신참변은 무차별적으로 한국 민간인들을 몇 개월에 걸쳐 학살한 사건이다. 3.1운동을 계기로 일어난 수많은 독립군들이 만주 지역에서 활기를 띠었고 청산리 전투로 일제로부터 큰 승리를 거두자,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3, 4개월간 한인 학살 작전을 감행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권력자들에게 일본군이 한국을 병탄했을 때와 완전히 똑같은 수법으로 여기 중국 지방의 한국인들을 핍박하고 있다고 보고해주세요.

 

… 만약 일본이 이런 식으로 중국 땅을 통째로 점거하는 행동에 미국과 영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정말 살 가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 사망자는 100명 이상이라고 알고 있어요.” – 스탠리 마틴 –

 

마틴은 경신참변의 피해 지역을 방문해 한인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촬영했다. 이 모습들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캐나다 토론토 시 장로회 선교본부에 전달했고 ‘토론토 그로브’ 지에 보도하는 등 일본군의 잔인한 살상행위를 국제사회에 폭로했다.

 

 

 

의병을 촬영한 종군기자 ‘프레드릭 맥켄지’

 

맥켄지가 만난 의병들

맥켄지가 만난 의병들

 

프레드릭 맥켄지(1869-1931)는 몇 달 전 종영한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듯하다. 드라마 최종화에서 경기도 양평에 있는 의병들을 사진에 담은 외국인이 바로 프레드릭 맥켄지다.

 

그는 1904-1905년과 1906-1907년 영국 런던 의 종군 기자로 두 번 한국을 방문했다. 맥켄지는 한국에 있는 동안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일어난 의병을 취재했다.

 

이때 맥켄지가 찍은 의병들의 사진들은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매우 유명하고 귀한 물품이다. 그의 사진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름 모를 의병들에 대한 존재를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맥켄지는 의병을 취재하면서 일제의 학살과 방화를 목격했다. 당시 제천이 지도상에서는 없는 마을이 됐다고 말할 정도로 일제의 만행은 참혹하고 끔찍했다.

 

맥켄지가 직접 목격한 것들은 ‘대한제국의 비극(1908)’과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1920)’을 발간해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렸다. 그는 이후에도 영국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한국을 사랑한 ‘프랭크 스코필드’

1919년 3월 1일, 서울광장 앞에서 만세를 외치는 민중들

1919년 3월 1일, 서울광장 앞에서 만세를 외치는 민중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한국 이름 ‘석호필’인 그는 1916년 선교사 겸 의사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3년 후 발생한 서울에서의 3.1운동. 그는 그때 모습 하나하나를 사진에 담았다. 전국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한국인들을 처음으로 해외에 알렸다.

 

그는 이 업적으로 ‘민족대표 34인’으로 불렸다. 스코필드는 일제의 참혹함도 전 세계에 전했다. 화성 제암리, 수촌리 마을 학살 현장 등 참혹한 모습들을 사진을 통해 공개했다. 1920년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까지 그는 일제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불의에 맞섰다.

 

스코필드는 1958년에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에는 한국의 가난한 학생들과 고아를 돌보는 데 앞장섰다. 또한 3.1 만세 정신을 강조하면서 독재정부를 비판하고 한국의 부정부패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서슴지 않았다.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은 스코필드는 1970년 4월 12일 “내가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주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영면했다. 현재는 국립 현충원에 안장됐다. 외국인인 신분으로 현충원에 안장되는 건 스코필드가 유일하다.

 

전시에서는 스코필드가 바라본 서울 3·1운동에 대해 알 수 있다. 글과 사진들을 통해 당시 느꼈던 그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그가 한국에 와서 말한 3.1정신을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여주며 관람객들에게 제공한다.

 

 

 

스코필드가 전한 3.1운동 정신을 눈여겨보는 시민들

스코필드가 전한 3.1운동 정신을 눈여겨보는 시민들

 

이번 전시에는 ‘스코필드와 함께한 저녁식사’라는 이름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떠오르게 하는데, 스코필드를 만났거나 그에 대해 언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아둔 것이다.

 

유관순 열사뿐 아니라, 정운찬 국무총리, 김근태 장관, 심지어 당시 사이토마코토 조선부총독의 언급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느낄 수 있다. 갤러리 내부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공간도 조성돼 있다.

 

한편, 시민청에서는, ‘3·1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다양한 특별공연과 체험 전시행사가 열린다. 3월1일부터 4일까지 ‘함께그려요 태극기’, 1일부터 7일까지 시민과 함께 만드는 전시 ‘내손으로 그리는 태극기’ 등이 준비돼 있다.

 

낯선 타국에 날아와 우리나라의 독립을 응원하고 도운 캐나다인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3.1운동 정신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전해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전시다.

 

만세운동을 직접 체험했던 이들이 기록한 글과 사진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방인이 전하는 3.1운동 이야기, 서울시 시민청에서 경험해보길 바란다.

 

 

■ ‘한국의 독립운동과 캐나다인’ 전시 안내

○일시 : 2월 23일 ~ 3월 31일
○장소 : 서울시청 시민청(지하1층) 시티갤러리

 

 

시민기자 김진흥, 박미선

 

편집국(sdm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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