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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0 오후 5:41:58 입력 뉴스 > 기자탐방

8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덕수궁 광명문’



지난 3월 1일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념행사가 있었다.

지난 3월 1일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념행사가 있었다.

 

1919년 1월 21일 건강에 별 문제가 없었던 고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일혈로 알려졌지만 순식간에 ‘독살설’이 매서운 꽃샘바람처럼 온 나라에 퍼졌다.

 

비록 일제에 의해 황실이 아니라 왕가로 격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하늘같은 존재인 황제가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은 압제에 숨죽이고 있던 백성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3월 1일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불길처럼 일었고, 승하 후 40여 일 만에 황제의 운구 행렬은 함녕전으로부터 광명문을 통해 남양주 홍릉으로 향했다.

 

제100주년을 맞은 3.1절 오후 덕수궁에서는 ‘광명문 제자리 찾기’ 기념행사가 열렸다. 황제의 마지막 순간을 간직한 광명문은 고종 황제의 침전인 함녕전 정문으로, 고종이 승하한 후 1938년 강제 이건되었다가 80년 만에 원래의 자리를 찾게 되었다.

 

 

광명문 복원과 관련된 자료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민들

광명문 복원과 관련된 자료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민들

 

이전영 문화재청 복원정비과장의 경과보고로 시작된 기념식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일제가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하려 훼손 변형한 광명문이 제자리를 찾는 오늘은 뜻깊은 날”이라며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곳이자 자주주권을 지키려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고종황제의 이상이 서려 있는 이곳”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제가 개칭해 쓴 ‘덕수궁’이 아니라 원래 이름인 ‘경운궁’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기념사를 열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경운궁 현판. 경운궁 즉조당에 걸려 있던 덕수궁의 옛 이름 현판으로 고종의 어필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경운궁 현판. 경운궁 즉조당에 걸려 있던 덕수궁의 옛 이름 현판으로 고종의 어필이다.

 

1593년 선조가 임시 거처로 삼았던 이 궁을 ‘경운궁’이라고 명명한 것은 광해군이었다.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의 의지를 다지며 근대화를 위한 열의를 다졌다.

 

 

대한제국 황제로서 황룡포를 입은 고종 어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대한제국 황제로서 황룡포를 입은 고종 어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러나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후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의 궁호가 ‘덕수’로 개칭되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광명문은 단순한 전각 출입문이 아니라 3·1운동 기폭제가 된 고종 국장 행렬이 출발한 곳이자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함께 간직한 곳”이라고 강조하며 “근대 역사 문화의 중심이었던 덕수궁을 온전하게 복원해 대한제국의 위상과 역사가 재평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광명문 현판이 제막되고 있다

광명문 현판이 제막되고 있다

 

광명문 복원은 일제가 훼손한 ‘덕수궁 제자리 찾기’ 사업의 첫 결실이다. 1904년 큰불로 정전인 중화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던 덕수궁은 1920년대부터 일제에 의해 참담한 수난을 겪어야 했다.

 

 ‘창경원’이 되었던 창경궁의 불행한 역사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지만 덕수궁의 참화 또한 못지않았다.

 

일제는 궁역을 잘라내고 전각을 헐어버렸다. 원래 덕수궁은 구세군 본관, 옛 경기여고 자리와 1905년 을사늑약의 현장이었던 중명전까지 포함하는 넓고 큰 궁궐이었으나 지금은 약 3분의 1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 권역은 조선저축은행에 매각되고 선원전은 헐려 창덕궁으로 옮겨졌으며, 덕수궁을 유원지로 만들기 위해 돈덕전도 철거되었다.

 

심지어 1922년에는 정기를 끊고 궁을 파괴하기 위해 미국대사관저에서 덕수초등학교로 넘어가는 돌담길을 만들어 궁을 쪼개기도 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돈덕전 복원 투시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돈덕전 복원 투시도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2038년까지 3단계에 걸쳐 ‘덕수궁 제자리 찾기’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예식’을 위해 지어진 건물로 대한제국의 자주 주권을 표명하고자 했던 돈덕전은 올해 착공하여 2021년까지 복원하고, 선원전 권역은 2038년까지 순차적으로 옛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한편, 국립고궁박물관에선 조선의 국왕,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 등 왕실 문화 유물에 대한 상설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경운궁 현판, 돈덕전 복원 투시도 등 대한제국 관련 유물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3월 31일까지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특별전시도 열리고 있다.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내려다본 함녕전과 광명문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내려다본 함녕전과 광명문

 

망국의 참담한 기억이 서린 우울한 궁궐로 여겨지던 덕수궁과 그 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던 대한제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지금,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서도 덕수궁 복원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광명문 복원이 제자리를 찾는 초석이 되어 광명문 그 이름처럼 밝고 맑은 미래로 나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 국립고궁박물관 안내
○관람시간 :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 (설날·추석 당일 휴관)
○교통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 도보 2분

 

 

시민기자 이선미

 

편집국(sdm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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