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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1 오전 12:29:11 입력 뉴스 > 구정뉴스

옛 조선신궁 자리, 남산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



[서대문인터넷뉴스]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라며 오랜 침묵의 벽을 깼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라며 오랜 침묵의 벽을 깼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여전히 너무도 아픈 사실이다.

 

할머니의 증언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연대하며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오후 옛 조선신궁이 자리하던 남산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음악극 ‘갈 수 없는 고향’으로 문을 연 기념식은 숙연하지만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제가 우리 나이로 92살인데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 아베한테 사죄받기 딱 좋은 나이”라고 외치며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고령이 무색하게 정정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도록 참여를 부탁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고령이 무색하게 정정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며 위안부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될 수 있도록 참여를 부탁했다.

 

이날은 특히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제작한 기림비를 서울시에 기증한 샌프란치스코 교민들이 자리를 빛냈다. 이미 2017년 샌프란치스코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바 있는 ‘김진덕 -정경식 재단’이 이번에도 뜻깊은 동상을 세우는 데 주축이 되었다.

 

재단 설립자 김한일 대표 역시 “할머니들이 바라는 두 가지 소원은 일본의 사과와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라며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서명에 참여해주기를 촉구했다.

 

또한 중국계 판사 출신으로 미국의 다인종 단체 연합체인 위안부정의연대 (CWJC)의 공동의장인 릴리안 싱, 줄리 탕도 참석해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학살과 만행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함께 손잡고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도 함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기림비는 시민들과 더 친숙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동상의 단마저 없애고 맨 땅에 세워졌다. 손을 맞잡고 선 한국과 중국, 필리핀의 세 소녀를 김학순 할머니가 바라보는 형상이다.

 

서울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남산에는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후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며 국가 제사를 지내던 국사당이 있었다.

 

일본은 1919년 3‧1 만세운동의 여파를 잠재우고 조선인들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조선신궁을 건축하며 국사당을 서대문 밖 인왕산 중턱으로 옮겨버렸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일본은 서둘러 신궁의 신령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식을 거행하고, 예배 대상물들을 일본으로 보낸 후 나머지 보물과 제문 등을 소각했다. 그리고 미군 진주가 임박하자 스스로 신궁을 해체해 철거작업을 마무리했다.

 

지금 이곳에서는 조선신궁을 건립할 때 철거된 한양도성이 발굴되고 있다.

 

태조 때 쌓은 토성의 흔적과 세종, 그리고 순조 시기에 축조된 성벽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 초기부터 일제 강점기의 기억을 지나 우리 근현대사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남산 자락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진 것이다.

 

 

회현자락 ‘한양도성 현장 유적박물관’ 공사현장 사진. ‘1970 교육연구정보원’으로 표시된 건물 앞 광장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회현자락 ‘한양도성 현장 유적박물관’ 공사현장 사진. ‘1970 교육연구정보원’으로 표시된 건물 앞 광장에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오래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이름을 얻은 ‘김삼순 계단’을 올라가면 세 소녀가 손을 잡고 서 있다. 그리고 김학순 할머니가 소녀들을, 소녀들이 살아갈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소녀들 사이의 빈 공간에 서서 같이 손을 잡는 것은 다시는 누구의 인권도 유린당하지 않도록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다. 일본이 저지른 폭력의 현장에서 ‘위안부 기림비’는 평화를 얘기한다.

 

여전히 공존을 얘기한다. 용서란 진정한 뉘우침과 사죄를 필요로 한다는 걸, 그래야만 다 같이 평화를 구현하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얘기한다.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길이다. 힘을 보태야 할 길이다.

 

 

시민기자 이선미

 

 

편집국(sdm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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