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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헌신 ‘파란 눈의 신부님’ ‘달동네 주민의 대부’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기사입력 2012-09-0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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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서울의 철거민과 달동네 주민들의 주거지원을 위해 헌신한 브레넌 로버트 존(Brennan Robert John, 한국명:안광훈) 신부가 ‘2012년 서울시 복지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66년 한국으로 와 저소득층

 위해 헌신한 안광훈 신부

 

대상을 수상한 안광훈 신부는 뉴질랜드 출신의 외국인 신부로서, 현재 일흔을 넘긴 나이로 20년째 삼양동 달동네를 지키며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사업, 주거복지, 대안금융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소통의 달인’, ‘달동네 주민의 대부’로 불린다.

 

1969년 '정선 신용협동조합', '전국 가톨릭 농민회 정선지부', '성 프란치스코 의원', '정선군 북면 여량리 신용협동조합' 건립과 1981년 목동재개발로 쫓겨나는 철거민 지원, 1992년 삼양동 달동네 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현재까지 지속하는 등 40여년간 저소득 계층을 위해 헌신해왔다.

 

안 신부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966년으로 3년 뒤 강원도 정선에 부임해 저소득층의 대출을 위한 ‘정선 신용협동조합’을 건립하고, 지역 병원이 없는 군민들을 위해 ‘프란치스코 의원’을 운영했다. 

 

가난한 주민들과 함께 한 구좌당 100원씩 모아 1972년도에 정선신용협동조합(현재 400억원의 자산을 보유)을 정선본당에서 시작하였으며. 1976년에는 정선군 북면 여량리 신용협동조합도 설립했고, 1975년 성프란치스코 의원을 건립하여 정선에 종합병원이 들어오기 전인 1990년대까지 운영했다.

 

또, 1981년 서울로 올라온 안 신부는 당시 올림픽준비를 위해 목동의 재건축 현장에서 어떠한 보상도 없이 쫓겨나는 철거민을 보고, 철거민의 생활터전 보호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철거민들의 입장에서 철거 반대운동을 지지하며 본당 건물 사용 등과 함께 물적, 심적 지원을 하였고,  이후 100세대 정도의 목동 철거민들이 시흥시 목화마을을 구성 할 수 있도록 당시 1,000만원의 종자돈을 기부하여 토지구입과 주택건축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92년에 달동네 주민들과 살기 위해 미아6동 돌산에 들어와서 달동네 주민들과 처음 만났으며 미아 6동에도 똑같은 재개발이 진행될 것을 예감하고 준비를 시작하였다.

 

1995년 삼각산동 달동네(현재 풍림, SK 아파트 일대 지역)가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주민과 함께 세입자로서의 권리보장과 임시 거주지 마련을 요구하고 미아 7동에 가이주단지를 건립했다.

 

임대주택 입주를 위한 보증금 마련을 위해 주민들과 협동공동체 생활을 위한 '솔뫼신용협동 조합'을 설립하고 현재도 송천동 지역 전셋집에서 살며 도시빈민을 위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와 함께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인해 실업문제가 심각해지자 ‘서울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의 운영위원으로 부임해 현재까지도 저소득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여하고 있다.    

 

또한 2000년부터 현재까지 강북지역자활센터 위탁운영을 통해 노숙인과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의 일자리 창출과 생활 안정을 위해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07년부터는 주민들의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위한 '강북주거복지센터' 설립을 제안하여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나미(gyinews@empas.com)

 

 

 

민병헌 기자 (sim69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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